본문/내용
당시 중국인들은 고구려에 대해 광적인 피해의식에 젖어 있었다. 수나라가 망한 것은 고구려 때문이었다. 당나라도 치욕적인 패배 끝에 고구려의 내분을 이용해서 고구려를 겨우 멸망시킬 수 있었다. 수와 당이 고구려에게 70여 년 간 연이어 패배했다는 현실은 오랜 이민족의 지배에서 겨우 벗어나 겨우 한족의 나라를 세운 중국인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했다. 또한 고구려는 문화적으로도 중국과 대등했기 때문에, 고구려에 대한 중국인들의 질투와 증오는 대단했다. 고구려에 글로써 원한을 갚으려던 당 태종은 『친서』를 비롯한 많은 역사책을 편찬하도록 주관하여 고구려를 한없이 깎아 내렸다. 또한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고구려 문명을 극도로 파괴해 버렸다. 고구려 사회 지도층 대부분을 끌고 간 것은 물론이요, 고구려의 무덤을 파헤치고, 고구려의 성곽과 궁궐을 불태웠으며, 각종 서적들을 전부 없앴다. 고구려가 사관을 두고 편찬했던 역사책인 『유기』100권. 『신집』5권 등은 그 흔적조차 사라졌다. 중국인들은 남아있는 자료들마저 소홀히 관리했으며, 의도적으로 평가 절하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역사 자료들은 고구려의 후손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고구려에 적개심을 가졌던 중국인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 대부분이다. 당, 송과 청 시대의 한족 문인들은 이민족에게 굴복 당한 현실에서 자존심을 만회하고자 역사서 등을 저술하면서 역사를 왜곡시켜 자신들의 우월함을 과시하려 했다. 그렇게 때문에 기록된 자료들을 제대로 비판하고 올바로 해석하지 않고서는 고구려의 참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실정이다. <광개토왕릉비문>을 한 번 살펴보면, 고구려 건국전설이 간단하게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