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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차 개혁의 개혁 방향에 있어서 많은 혼선이 있었다. 즉 일본은 일본군의 계속적 주둔, 경인선부설권, 목포의 개항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일한조약(가칭)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 조약과 아울러 일본은 조선에 500만원의 재정 차관의 제공을 제의하였는데, 이는 조선 정부의 호의를 사기 위한 일본의 당근 정책이었다. 정부는 당시 퇴직 관리와 군인의 퇴직금 지급과 새 군대와 경찰의 창설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일본의 이러한 차관 제의는 중앙과 지방의 재정권을 잠식하고 장악하기 위한 일본의 계략이 숨어 있었다. 이에 박영효, 유길준 등은 일본의 차관 조건에 반발하여 오히려 일본과 갈등이 심하였다. 그리고 개혁과 자주성을 강조한 박영효는 일본의 압력에 미온적인 김홍집, 조희연을 밀어내고 친미적인 박정양과 제휴하여 단기간의 박영효 내각을 수립하였다. 하지만 민비의 정치적 음모에 의하여 박영효는 곧 물러났다. 비록 박영효가 다루기 까다롭고, 도전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본의 변함없는 동조자였는데, 박영효의 실각은 일본의 조선에서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게 되었다. 더욱이 청일전쟁 직후 팽창하는 일본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소위…
참고문헌
◎ 參考文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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