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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예술계는 어느 작품이 여성이나 남성을 벗기거나 남성과 여성의 성관계를 묘사해도 그것이 작품 전체의 개연성이란 잣대에 비추어 보아서 합당하면 외설이 아니라는 해법을 내어 놓고 있다. 이런 통념은 얼마 전 연극 `미란다`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법원의 판결 근거가 되었다. 외설적인 장면을 공연했다는 이유로 불구속 기소돼 징역 1년이 구형된 연극 `미란다`의 주연 남배우 겸 연출자인 극단 포스트대표 최명효(崔明孝) 피고인(39)에 대해 공연음란죄를 적용,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연극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여배우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연기가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었다고 보기 어렵고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도 여배우의 전라 연기는 성적 수치심과 음란성을 자극하는 것으로서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는 예술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설에 대한 판단은 시대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이탈리아의 대문호 보카치오가 그의 저서 ‘데카메론’을 처음 발표하였을 무렵 당시 지배계층이자 지식층이었던 교회는 이를 음란 작품으로 여겨 혹평을 하였으나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의 문학 비평가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진수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광수의 무정, 정비석의 자유부인 도 발표되었을 당시 지식층과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그 내용 이 음란하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에는 데카메론의 경우와 같이 찬사를 받고 있다. 이렇게 작품의 평가가 달라진 이유는 예술적 가치관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로렌스의 차탈레부인의 사랑 의 경우, 근대 일본 법원에서 음란 외설 작품으로 판결되어 출판과 유포를 금지당했다 하지만 지금 어느 누구도 이를 음란 외설 작품으로 여기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남성 우월적인 당시에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혁명적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