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배경
러시아에서는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극심한 공황, 실업자의 증가, 임금의 저하, 지가 폭등 등으로 고조된 노동자의 반정부 운동과 자유주의자의 입헌운동이 러·일 전쟁에서의 패배를 계기로 폭발되기 시작하였다. 전쟁이 불러일으킨 잔인한 학살과 계속되는 굶주림,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병사들을 전장으로 내몰아 무자비한 도살에 내맡기는 차르 정부와 군장교의 범죄적인 행동에 의해 한층 고조되었다. 전쟁의 참혹한 비극은 억압받고 있던 인민의 비참한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격화시켰다.
혁명은 일련의 파업에 의해 시작되었다. 많은 파업들 중에도 특히 중요한 것은 페테르부르그 최대의 금속공장인 프틸로프공장에서 일어난 1월 파업이었다. 이 파업은 곧 전 도시에 확대되었다.
여기서 러시아 노동사에 있어서 비극적인 한 사건이 일어났다. 1905년 1월 9일 페테르부르그의 동궁 앞에서 벌어졌던 ‘피의 일요일’의 학살이 그것으로 이것을 직접적인 계기로하여 제 1차 러시아 혁명이 시작되었다.
◇피의 일요일◇
페테르부르크의 동궁광장에서 일어난 노동자 학살사건. 1월초 프틸로프 공장 노동자들이 동료 4명의 해고문젤 파업을 일으키자 이것은 즉시 전시에 파급되었다. 전년말 경찰의 후원 하에 페테르부르크 러시아 공장 노동자의 모임이라는 어용조합을 조직한 신부 가퐁은 노동자들의 갖가지 경제적·정치적 요구를 적은 청원서를 작성하여 동궁을 향해 청원행진을 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하여 1월 9일 이른 아침 시내 각 지구의 노동자들은 성상(聖像)과 황제 차르의 초상을 들고 동궁을 향해 행진했다. 황제는 마침 부재중이었으나 경찰과 군대가 이 평화적 행진에 대해 발포하기 시작, 광장의 눈(雪)울 피로 물들였다. 사망자 500~600명, 부상자 수천명을 낸 이 사건은 차르에 대한 소박한 노동자의 신뢰를 단숨에 무너뜨리고 제 1차 러시아혁명의 발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