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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산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비로,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 곳 적성을 점령한 후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
1978년에 30㎝ 정도가 땅속에 묻힌 채로 발견되었는데, 비면이 깨끗하고 글자가 뚜렷하다. 비(碑)는 위가 넓고 두꺼우며, 아래가 좁고 얇다. 윗부분은 잘려나가고 없지만 양 측면이 거의 원형으로 남아있고, 자연석을 이용한 듯 모양이 자유롭다. 전체의 글자수는 440자 정도로 추정되는데, 지금 남아있는 글자는 288자로 거의 판독할 수 있다. 글씨는 각 행마다 가로줄과 세로줄을 잘 맞추고 있으며, 예서(隸書)에서 해서(楷書)로 옮겨가는 과정의 율동적인 필법을 보여주고 있어 서예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2. 단양신라적성비 탁본
545∼550년의 신라시대.
높이 93㎝, 윗너비 107㎝, 아랫너비 53㎝, 두께 22㎝ 내려오면서 14㎝, 5㎝ 로 얇아진다.
단양신라적성비의 윗부분이 거의 절단, 파손되었지만 비 표면은 22행으로 이루어졌고 각 행의 명문도 20자씩으로 짐작된다. 19행까지는 20자씩으로 모두 380자이고, 20행과 21행은 19자씩으로 28자이며, 끝행은 12자로 명문은 도합 430자로 추산되는데, 지금 남아 있는 글자수는 총 284자로 거의 판독이 가능하다.
글자는 가로와 세로의 줄을 잘 맞추고 있고, 예서풍(隸書風)이 있는 해서(楷書)로서 서예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글자체는 중국 남북조 초기의 것과 일치하며, 굴곡을 지닌 율동적인 글씨로 해서(楷書)에서 예서(隸書)로 옮겨가는 과정의 여운이 그대로 나타난 운필법(運筆法)이다.
3. 단양신라적성비의 역사적 배경 및 내용
-비문 : 글씨는 1.5㎝∼3㎝의 직경으로 가로 세로 줄을 잘 맞추어 쓴 예서풍의 해서체로 본래 고구려 땅인 적성현(단양의 옛지명)의 지명이 3번씩이나 적혀있다. 비문의 문장은 크게 사등…
-비문 : 글씨는 1.5㎝∼3㎝의 직경으로 가로 세로 줄을 잘 맞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