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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의 아편전쟁 이후 본격화된 서양문명의 충격은 중국에 보다 의미있는 변화를 강요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보다 큰 중점은 중국의 내부적 요소와 서구적 요소가 결합되어 보다 큰 변화를 초래하게 될 19세기 중반 이후에 두어야 하겠다.
2. 제1‧2차 아편전쟁 기간의 정치상황
1) 제1차 아편전쟁 전후의 정치상황
수잔 나퀸, 이블린 S.로스키는 청대 정치권력의 중심이동을 3단계로 구분한다. 청 초로부터 1730년대에 끝나는 제1단계에서는 제국의 왕자들과 만주족의 제도가 중심적인 시대였다. 이후부터 1820년대까지의 2단계에서는 한림원이 관료경력의 중심채널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고 군기처(軍紀處)가 정책결정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과거(科擧)와 군기처가 정치적 연계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부터 청 말까지의 3단계에서는 관료외적 연결망이 다시 한번 대두되었고, 지방의 중요성이 증대되었으며 만주족이 최고위직을 다시 장악하였다. 이는 19세기 초엽의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들의 결과였다. 1820년대 광주에 세워진 학해당처럼 고전과 실질적인 교육에 전념하는 개인 서원들이 지적, 정치적 연결망의 재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