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몇 차례에 걸쳐 제거당하고, 박지원 일계(일계)의 학파도 문체반정(문체반정)이라는 죄명 아래 탄압을 받게 됨으로써, 제3기에 접어들어 성격상 큰 변화를 나타냈다. 즉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의 주장이 퇴보하고 대신 금석·전고 등의 실증을 통해 경사(경사)의 진의를 밝히는 실사구시론이 등장하였던 것이다. 실사구시학파의 특색은 학문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엄격한 객관적 태도에 기초하여 사실을 밝히는 데 있었으므로, 자기의 이념이나 신념에 따라 경전을 주관적으로 해석한 이전의 실학자들과는 달리, 학문하는 방법에서는 근대적·과학적인 연구태도를 부식(부식)하는 데 큰 공적을 남겼으며, 격조 높은 학문성을 보였다. 그러나 실사구시파의 거장(거장)인 김정희의 경학연구는 만편적인 부분에 머물러 체계화되지 못하였으며, 일부의 아류(아유)들은 장전(장전)·산고(산고) 등 백과전서적 지식을 과시하며 잡다한 나열과 지리한 변증(변증)으로 시종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실학의 사상성이나 사회개혁의 의지가 이전에 비해 쇠퇴하였다. 조선 후기에 와서 실학은 제각기 지표나 연구분야를 달리하였으나, 그 이념과 정신에서는 서로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실용정신이다. 기존의 주자학파가 등한시하였던 이용·후생 문제에 관심을 보임으로써 현실사회와 유리되지 않는 학문관·현실관을 전개하였다. 둘째, 실증정신이다.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관념론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현실문제를 실증을 통해 고찰하였으며, 경서고증뿐 아니라 역사·지리·제도 등에 이르기까지 학문하는 방법에서는 근대적·과학적인 연구 태도를 지녔다. 셋째, 비판정신이다. 주자학의 전통적인 권위에서 탈피하여 자유로운 학문탐구를 존중하고, 주자학파의 학문적 폐쇄성이나 현실사회의 모순에 대한 과감한 비판과 새로운 개혁론을 제기하였다. 넷째, 개방정신이다. 종래의 주자학 일변도에서 양명학·고증학뿐 아니라 불교·노장사상(노장사상) 및 서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학문적 관심과 함께 선진문물을 적극 수용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