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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동경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한 <동우회 순회극단>에 윤심덕이 적극 가담한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주요 맴버로는 와세다대학 영문과에 재학중이던 김우진을 비롯해서 홍난파, 마해송, 김기진, 홍해성, 조명희 등 바로 음악과 문학을 전공하는 일본 유학생들이었다. 이 순회 극단은 여름방학이 되면 귀국하여 극단 활동을 통해 애국애족의 계몽을 전개하고 나아가 일본 압제로부터 독립하는 데 나름대로 한몫을 맡겠다는 목적 의식이 너무나 뚜렷한 모임이었다.
윤심덕은 이 극단에서 그녀와 마지막을 함께 한 김우진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시작부터 불행을 예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 김우진에게는 이미 처자식이 버젓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윤심덕은 순회 공연 후 일본에 가서 더 공부한 다음 한국에 돌아왔다. 그녀를 위한 음악 발표 무대가 특별히 마련되어 있을 만큼 그녀는 한국최초의 성악가로 성공하게 되었다.
그녀가 성악가가 되기 위해 일본을 떠났을 당시 노래부르는 사람은 모두 ‘딴따라’라고 말하며 무시했던 시기였으므로 그녀의 성공은 더욱 뜻 깊은 것 같다.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개화되면서 그들도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귀와 마음가짐이 준비되어 있었고, 윤심덕의 열정도 대단했기에 그들을 만족시킬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심덕의 가정형편은 여전히 좋지 않았고 음악에 소질이 있던 동생 성덕이의 미국 유학 여비 문제까지 겹쳐 돈에 대한 궁핍은 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