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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고려시대에 이르면 남성들의 여성관은 눈에 띌 정도로 변질된다.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 대한 접대로 딸을 하룻밤 잠자리의 선물로 제공하는 사례도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재위 918~943)이 왕국을 세우는 과정에서 지방의 호족들은 왕건이 가는 곳마다 그의 딸들을 바쳐 왕건의 잠자리 시중을 들도록 했다. 왕건은 잠자리를 같이한 후 그 여인의 아버지인 호족의 `세력`이 쓸만하면 여인을 데려다가 자신의 처첩으로 삼고, 그렇지 않으면 하룻밤을 함께 지낸 것으로 그쳤다. 이로 인해 왕건은 29명의 `후`와 `부인`(첩)을 두게 되었다. 고려사에 보면 왕건과 관계했던 여인들 중 한 아비의 두 딸도 있었는데 이 여인들은 왕건이 돌아보지 않게 되자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다.
11세기에 영주 안산현 사람 김은부는 공주에서 재직 시에 거란족의 침입으로 인해 피난 중인 현종(재위 1009~1031)에게 두 딸을 바쳐 잠자리 시중을 들게 했다. 두 딸은 모두 현종의 왕후(원성왕후, 원혜왕후)가 되었다. 김은부는 그 덕에 벼슬이 형부시랑과 호부상서를 거쳐 나중에는 창국공신, 안산군개국후에 이르렀다. 12세기에 이르러 이 같은 풍조는 더욱 심해졌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북역 삼국사기』, 김부식, 고전연구실 옮김, 신서원
『북역 삼국유사』, 일연, 리상호 옮김, 신서원
『한 권으로 읽는 삼국왕조실록』, 임병주, 들녘
『고려사』, 아세아문화사
『화랑세기-신라인의 신라 이야기』, 김대문 저·이종욱 역, 소나무
「한국 전통사회 여성관의 대비적 검토(신라와 고구려 여성관을 중심으로)」, 경상대학교 윤리교육과 손병욱 교수님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