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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야요이(彌生) 시대의 일본
야요이(彌生) 시대 일본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당시의 일본에서는 문자가 아직 없었으므로 야요이 시대를 전해주는 일본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웃의 한 제국이나 삼국시대의 위 제국 등은 이미 역사책을 편찬했었고 그 속에 조금이나마 당시 일본의 모습이 들어있다.
반고(班固, 32-92)의 저서인 《漢書》지리지에서는 기원전후의 일본을 倭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것은 100여 개의 小國(부족국가)으로 분립되어 있었다고 하며, 小國의 首長에는 정기적으로 낙랑군(樂浪郡)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하는 자가 있었다고 한다.
《후한서》동이전(東夷傳)에는57년에 倭의 ‘奴’라는 小國의 國王은 後漢 왕조의 수도 洛陽에까지 使者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後漢의 황제는 奴國王에게 ‘漢倭奴國王’의 인발이 있는 金印을 보내주었다. 奴國王은 강대한 중국의 天子에게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보증받고 倭國에서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데 後漢書에서는 107년에 奴國이 아닌 다른 倭의 한 小國이 生口 160명을 後漢의 安帝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것은 1-2세기 경의 倭에는 많은 소…
참고문헌
구태훈, 《일본역사탐구》, 태학사, 2002
카와이 아스시, 《하룻밤에 읽는 일본사》, 서울 중앙M&B, 1997
고미후미이코, 《일본인이야기》, 이손출판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