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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학의 계열에 서는 역사가 중에서 위당 정인보는 중추적인 기능을 하였다. 그는 일제 관학자들에 의한 우리 역사의 왜곡과 우리 역사학자들이 줏대없이 역사를 연구하여 일제의 식민지 문화정책에 동조하는 것을 보고 역사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는 동아일보에 <오천년간 조선의 얼>을 연재하였고, 여기서 그는 일제 관학자들이나 그 추종자들이 제기한 한사군론(漢四郡論)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였다.
위당의 역사학에서 가장 정채를 발하는 부분은 정신사적인 역사관인데, 이른바 <얼>의 사관이 그것이었다. 그이게 있어서의 <얼>은 민족정신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는 역사의 본질을 이 <얼>에서 찾고 있었다.
위당과 동시기에 위당의 동학(同學)으로서 민족사학의 사풍의 또 다른 일면을 개척하고 있었던 것은 민세(民世) 안재홍이었다. 민세의 고대사 연구에서 주목되는 것은 단군조선에서 삼굯대까지의 우리 역사의 대계를 고조선사회의 발전과정이라는 논리로서 정리한 점이다. 특히 기자조선의 문제를 단군조선의 그대로의 계승관계로 파악하여, 그것이 중국인 기자에 의하여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우리 고조선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사회발전의 한 단계성을 표시해 주는 표현이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아울러 민세의 고대사 연구는 그 방법론에 있어서도 일단의 전진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는 언어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고대사회의 발전과정의 대계를 찾는 동시에 그 사회발전의 단계성동 아울러 파악한다는 방식을 취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