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Ⅳ. 지역의 발견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전반을 통해 역사의 주체와 연구 주체를 확인하려는 의도에서 ‘향토사ꡑ에로의 복귀를 지향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鄕土史硏究講座》가 대표적이다. 그 내용으로는 지방사 연구자들은 향토인이 되었다는 각오로 일본사 일반의 기성의 지견으로 볼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문제를 발굴하고, 그 토지에 의거한 해석·분석을 통해 향토의 역사를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일본사 전반의 이해를 새롭게 한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地方史硏究協議會》도 위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자기반성을 하고 있다.
지방사 연구의 성격과 방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된다. 木村礎는 1968년 패전후의 지방사 연구가 기존의 향토사 연구와의 결별에는 성공했지만, 일지방의 역사라는 독자의 구체적 대상과 결합되지는 못해서 지방사 연구 독자의 방향을 잃고 역사연구 일반 속에 흡수되어 버렸다고 했다. 지방사는 법칙이나 이론보다는 오히려 무엇이 어떻게 있는가 하는 구체성과 미세성을 구극의 본질로 하며, 일정지역의 歷史事家중에서 민중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풍부하게 그려내는 것이 지방사 연구의 본래의 성격이라 했다. 1970년대 전후에 급속히 유포된 지역사란 단어는 시민운동·지역주민운동 등의 사회운동에 대응하는 특정의 어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또한 향토사·지방사·(제지방 역사의 총체로서의)一國史, 一般史의 문…
Ⅴ. 맺음말
을 가장 강하게 가지고 있던 板垣雄三마저도 최근의 연구에서는 실체적 문명권=지역을 설정하고 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인간의 아이덴티티의 선택이라는 차원, 즉 아이덴티티란 정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응하여 주체적ㆍ정치적으로 선택되는 신축ㆍ자재한 것이라 설명하여 해소하고자 했다. 그러나 근대의 국민국가가 통합된 영역과 국민의 균질화를 통해 형성되었음을 상기하고 현재까지 차별과 지배의 구조가 국가를 매개로 전개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어떠한 실체적 지역의 설정도 국민국가의 완전한 상대화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특히 아이덴티티가 일반적으로 문화적 속성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음을 감안하면, 전략적으로 구사되는 <지역>은 외부와의 중대한 마찰이 발생할 경우 일정의 실체적 지역을 바탕으로 나타나는 문화 아이덴티티=국민문화의 구심력(성)에 의해 와해될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한편 실체적 지역개념의 대극에 존재하는 조작개념으로서의 지역은 각자의 인간이 각자의 목적에 따라 편의적으로 설정하는 세계인식의 틀이기 때문에 실체적인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다. 따라서 조작개념에 바탕을 둔 지역의 역사는 객관적인 논리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위의 논의들을 통해 얻어지는 시사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즉 위의 논의들의 배경에는 근대의 국가체제를 상대화ㆍ돌파하고, 국가와 국경을 넘어 권력관계의 규정성을 제거하려는 경향성이 존재한다. 위의 논의들은 제문제에 대한 긴장의 소산이며, 그 해결을 위한 노력이라 생각된다. 그 결과, 적어도 역사 서술의 방법을 국가와 지역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