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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년 뒤, 당편이는 그 시설에서 나와 문중 마을에 나타난다. 마을 사람들의 인정으로 연명하다가, 버려져 있던 향군회관에 거처를 마련해 주고 거택보호 대상을 받게 되어 구걸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얼마 뒤 향군회관에 늙은 건어물 행상이 들어와 한쪽에 눌러 앉아 좌판을 펼쳐 놓고 장사를 시작한다. 그역시 장애를 지닌 홀아비였기에 당편이와 잘 어울리게 되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어느 해 단오날, 그 동안 모은 돈으로 한껏 차려 입고 나들이를 한다. 그들이 기우뚱기우뚱 뒤뚱뒤뚱 가는 모습이 매우 행복해보였다고 그들을 본 마을 사람들은 회상한다.
그 뒤로 동정과 호기심의 대상으로 지켜보던 당편이를 더 이상 특별한 존재로 보지 않게 되었고, 살기 바빠진 삶 속에서 잊고 지내게 되었다.
서울에서 소문에 의해서만 당편이에 대해 이야기하던 작가도 당편이 소식을 들을 수 없게 된다. 그 뒤 고향 동창회에 갔다가 다시 수용시설로 보내어진 당편이 얘기를 듣게 된다.
그 단오날 화려한 외출 이후 마을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가면서 건어물 영감에게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가 죽자 마을에 속한 존재가 아님은 발견하게 되자 수용시설을 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었던 하나는 바로 공동체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다.
요즘에는 당편이같은 장애인은 거의 수용시설이나 요양원 등에 있어 길거리나 바깥 사회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당편이가 처음 녹동댁에 받아 들여지던 그 시절만 해도 당편이와 같은 정상적이지 않은 존재들이 살아 갈 수 있는 자리가 있었고, 녹동어른은 그걸 공인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녹동댁에서 기거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며, 놀림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사람들과 조화되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런 조화되어 가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그 시절의 따뜻하고 정겨운 삶을 그리워하면서 이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