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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사에 대한 글입니다.

한정사리포오오터1

본문/내용

물론 우반동으로 내려간 이후에도 유형원은 서울로의 왕래나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을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그는 전후 아홉 차례에 걸쳐 서울 등지를 왕래했는데 그것은 벼슬을 구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학문과 교유를 위한 여행이었다. 당시의 행적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유형원의 나이 44세 때와 47세 때 당시 연천에 칩거하고 있던 남인의 거유 허목을 방문하여 학문과 시사 전반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던 점이다. 당시 허목은 유형원을 환대하고 “유형원은 임금을 보좌할만한 재주이다. 쇠퇴해가는 이 시대에 이같은 인물이 있었던 줄 미처 몰랐다.”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백호 윤휴 역시 유형원과 서로 격려와 충고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관계였다. 이 같은 사실을 보면 유형원의 정치적 연원은 본래 북인이었지만, 부친 유흠이 죽은 뒤부터는 남인계로 돌아섰다고 할 수 있겠다. 44세 때 집안끼리 친분이 있던 민유중등의 추천을 받아 한 때 벼슬에 나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를 포기했던 유형원은, 이후 부안에 머물면서 필생의 저작인 『반계수록』을 저술하는데 몰두했다. 46세 때인 1667년(현종8년)에는 조선 연안에 표류했다가 청나라로 호송되기 위해 서울로 압송되었던 복건인 정희 일행을 만나 명나라 영력황제의 생사를 확인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후 그가 중국으로 이어지는 수로를 연구하고,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조총을 준비하고 군사기술을 익힌 것 등은 그의 북벌지향적 시각과 관련해 주목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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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 : ocko*****
Date : 2014-03-23
FileNo : 1615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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