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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묘지, 시장, 학교 부근으로 세 번 집을 옮겼듯이 저희 어머니께서도 또한 전라도 땅 끝 완도의 작은 섬에서 태어난 저를 교육 환경이 더 낳은 도시로 유학을 보내기 위해 법을 어기면서까지 초등학생인 저의 손을 잡고 무작정 광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법적으로 시골에서 도시로의 전학(轉學)은 가능했으나 유학(遊學)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머님의 결단력과 추진력에 영향을 받아서 저 또한 한번 마음먹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고 마는 성격입니다. 또한 미래를 내다보는 점에 있어서 어머님처럼 산속의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산 전체를 볼 줄 아는 안목 또한 어머님의 영향이라 봅니다.
초등학교 6학년의 도시에서의 유학생활은 편하고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한편으로 저의 견문을 넓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활과 문화적인 면에서도 많은 차이와 충격을 느꼈지만 저의 사고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저의 존재 인식이었습니다. 전체 학생이 100명도 안 되는 시골 학교에서 최고인줄로만 알고 지내던 저는 한 학년이 600명이 넘는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모래사장의 모래알과도 같이 우리나라 전체로 봤을 때 ‘나라는 존재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처음하게 됐습니다. 이런 문화, 생활, 생각에서의 충격은 저로 하여금 겸손이라는 것을 깨우쳐주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저의 자취생활은 지금의 대학생활까지 이어 지고 있는데 이런 8년 동안의 자취 생활은 저에게 독립성을 키워주었습니다. 군대를 남들이 꺼려하는 해병대를 선택하게 된 이유도 오랜 자취 생활로 다져진, 고통을 즐기려는 저의 선택과 해병대라는 특수한 매력이 맞아 떨어졌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작은 사회라고도 불리는 군대에서 사람을 다루는 방법, 대인관계를 중시 여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학생활에서의 전통무예 동아리 활동과 버팀목 학회활동 등 적극적인 대학생활의 밑바탕이 됐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