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2. 본론
1) 문헌적인 해석
평양에서 발굴된 무덤이 단군릉이란 것을 증명하는 문헌적인 근거로는 우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을 들 수 있다. 이 책에는 강동에는 두 자리의 큰 무덤이 있는데 그 하나는 현의 서쪽 3리에 있으며 민간에서 단군묘라고 전해 오는 것으로서 그 둘레가 410자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허목이 쓴 ‘동사(東事)’ 단군세가에는 강동현 서쪽에 단군총이 있다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도 여러군데에 관련 기록이 있는데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등에서는 단군릉에 대한 수리와 묘에 대한 관리를 신경써서 평양감사에게 지시한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은 결국 조선 정부가 강동의 단군 무덤을 중시하고 국가적인 관심 속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따라서 단군은 실재한 인물이며, 이번 평양에서 발굴 무덤이 바로 단군릉임을 보여준다고 한다.
남한에서는 볼 때 적어도 이번 발굴 무덤이 ‘단군릉’으로 불려 왔음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후에 논하게 될 단군릉에 묻힌 인물에 대한…
참고문헌
1. 이형구, 『 단군과 단군조선 』, 살림터, 1995,
2. 윤내현, 『 고조선,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 민음사, 1996,
3.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분과, 『 문답으로 엮은 한국고대사 산책』, 역사비평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