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 양자 사이에서 제임스와 찰스는 이론상 그들의 왕권 신수설을 도도하게 주장하면서 정치관을 위태롭게 하였고 정치적 자유를 고수하려는 영국 인민들의 욕구가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엘리자베스 치세하에 대두된 ‘퓨리턴들’이라고 알려진 집단은 여왕이 수립하려고 생각한 것보다 더 폭넓은 영국 국교회의 변화를 원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및 종교적 ‘의견과 이념’에 대한 국왕을 비롯한 왕당파와 거의 대다수가 퓨리턴인 의회파의 갈등은 결국 청교도혁명으로 이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Ⅱ. 청교도 혁명의 전개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이은 제임스는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는 사람으로 국왕은 단지 신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며 따라서 왕권은 모든 법률의 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때문에 제임스는 퓨리터니즘을 동조하는 경향이 있던 하원과 충돌하게 되고 이 둘 사이의 논쟁은 격화되었다. 그의 뒤를 이어 아들 찰스 1세가 1625 년에 즉위하였는데 찰스는 아주 중요한 시점에서 양보할 줄 아는 유연성, 즉 정치가로서의 수완을 결여하고 있었다.
1629년의 2개의 결의를 끝으로 의회를 열지 않고 승인없이 세금을 징수한 찰스는 연안도시에서만 징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