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퇴색한 종교관
현대 일본인의 대다수가 ‘무종교’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데에는 ‘무종교’ 심리를 직접적으로 형성하게 한 근대의 역사가 종교관을 퇴색시켰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이후부터 일본의 정부는 국민 생활 구석구석 및 종교에까지 강력한 통제를 가했다. 그 이유는 강력한 중앙 집권적 ‘국민 국가’를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적인 국민 교화가 필요했다. 일본은 근대의 출발에 있어 국가 경영에 신화 즉, 아마테라스노 오미카미라는 천상계 신의 자손만이 지배자로서 정당하다고 하여 천황은 곧 신의 자손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때 정부에서는 천황 절대화의 이데올로기를 만들기 위해서 신도 즉,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궁정 신도를 채택하게 된다. 이렇게 종교는 스스로 근대화를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천황제 국가라는 정치 체제에 교묘하게 편입되어 가는 과정에서 근대화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수동적인 자세가 일본 근대 종교사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리고 메이지 정부는 천황을 절대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독교 금령이 해제됨으로 인해서 기독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어진다. 그리하여 불교의 주류는 여전히 장의 불교의 길을 계속 달려갔으며, 신들은 여전히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사후의 문제를 보류해 둔 상태였다. 신사합사령은 가깝고 친근한 신들이나 이름도 없는 수많은 신들이 신앙의 대상에서 제외 되 일본인의 신앙을 지탱하고 있던 특수한 부분, 즉 일본인의 신앙에 있어 모근(毛根)이라 할 만한 부분들이 배제되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일본인의 정신 생활은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가나 자연 종교의 주요 담당자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국가에 영합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종교, 특히 교단 종교에 적극적으로 다가서려 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되었다. 또한 폐불 훼석으로 심한 타격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장의 불교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고 단가(檀家)제도 또한 잔존했기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은 장의 불교에 의지하는 것으로 종교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보는 경향을 띠게 된다.
◎ 일상주의와 종교
그리고 종교는 일상주의와 결부되어 교단 종교가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일상주의가 종교와 만남으로써 무종교라는 표현이 더 가시화 된다.
야나키타는 일본인이 원하는 신은 화려한 교회나 신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생활에 밀착된’ 신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신에 대한 관념은 일본인의 이상이 ‘사계절, 아침저녁의 일상에서 느껴지는 평범한 행복’이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나 정토진종에서 말하는 강한 초월성을 가진 신이나 부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처럼 ‘평범 지향’의 성향은 종교에 있어서까지도 ‘평범’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야나기타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을 존중했는데 그것은 동시에 일본 민중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평범하거나 일상적인 생활을 존중한다 하더라도 현실 생활에서는 때때로 흉포한 악행에 휘말려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또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어떤 비일상적
참고문헌
일본인의 사유방법』, 나까무라 하지메, 도서출판 우진, 1982
『현대일본 종교문화의 이해』, 시마조노 스스무, 도서출판 청년사, 1997
『일본인과 일본문화』, 사비 료타로·도널드 킨, 을유문화사, 1993
『일본을 이끌어 온 12인물』, 사카이야 다이치, 자유포럼, 1997
http://www.donginuni.com/
비디오 - 일본인의 신앙심 : 그로리미디어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