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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내용에는 구태 의연한 요소도 적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태양계의 모습이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태양계와는 다르다는 점과, 지구의 공전과 자전의 증거를 하나도 밝혀내지 못하였으며, 이론을 뒷받침할 관측자료를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이와 같은 고루한 천체관에도 불구하고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간행된 1543년을 근대 자연 과학의 원년으로 보는 데는 아마 그다지 반대가 없을 것이다.
한편, 케플러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이탈리아의 과학자 G.갈릴레이는 1632년 출간된 그의 저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두 대우주체계에 관한 대화》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행성들의 공전궤도가 타원이라는 케플러의 견해보다는 원이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을 믿었고, 특히 목성은 자신의 둘레를 원운동하는 4개의 위성을 거느리고 태양 주위를 원운동한다고 보았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천문관측 결과에 의거하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한 믿음을 굳히는데, 이것이 로마교황청의 반발을 사기 시작하였다. 성서와 지동설과의 모순성에 관하여 제자들에게, 그리고 자신이 섬기는 대공의 어머니에게 편지형식으로 자기의 생각를 써 보냈는데, 이로 말미암아 로마의 이단심문소에서 재판이 열려, 앞으로 지동설은 일체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리고 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