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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있어서 고대사 연구는 많은 논란이 있고 아직까지도 정립되지 못한 채 명확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는 부분이 많다. 이러한 고대사는 부족한 역사적인 사료와 도굴로 멍들어버린 유물로 인해 더욱더 안타깝게 하고 있다. 발굴되는 유물과 역사적 사료 하나하나에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여 우리나라 고대사를 정의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대사 인식에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지금, 50년 동안 교류가 단절된 북한과의 역사인식 차이는 상당히 심각하다. 분단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학문적 성과로 이질적으로 느낄 만큼의 틈이 벌어졌다는 것은 역사가 얼마나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 우리와 북한의 접근 방법과 해석상의 차이가 크다. 서로 단절된 기간이 길었던 탓과 각 지역의 유물들을 서로 비교 검토할 수 있는 토대 등이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각 지역에 남아있는 문헌을 중심으로 상호방문이나 공동연구를 할 수 없는 가운데 각각의 지역에 산재한 부분적인 유물, 유적들에 의해서만 검증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평양에서 발굴된 단군릉과 동명왕릉을 가지고 북한과 남한의 역사적 인식차이를 살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