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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대통령 하야 및 자유당 정권 종말
4월 26일, 서울 시내엔 삼엄한 경계태세가 취해졌고 시위대의 규모도 엄청나게 불어났다. 교수단 시위 이후 국민들의 요구는 이승만의 하야로 모아졌다. 4·19혁명 때 경찰의 발포로 친구를 잃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어깨동무를 하고 시위에 참여했다. 경무대를 지키던 계엄군은 실탄을 장전한 상태였지만, 처음부터 엄정 중립의 입장을 지켜 군은 더 이상 국민의 희생을 원하지 않았다.
사태수습이 불가능함을 알아차린 이승만 대통령은 마침내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마침내 불의에 항거한 민주이념이 승리한 것이다. 새로운 민주시대를 염원하는 환호와 만세소리로 전국이 들끓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화장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부통령 이기붕 일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승만의 하야 후 허정 내각수반이 과도정부를 이끌었고, 학생들은 파괴된 질서를 회복하는데 힘썼다. 그리하여 1960년 8월, 의원내각제의 장면 내각이 새롭게 출범하게 되었다.
(3) 성격과 의의
학생과 시위 군중은 4.19혁명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후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한 채 야당인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 보수정당인 민주당은 혁명적인 개혁을 미루었고, 5.16 쿠테타로 민주당 정권마저 무너짐으로써 4.19혁명은 미완의 혁명이 되고 만다.
그렇지만 4.19혁명은 남북분단과 장기집권으로 질식되었던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일깨우고 국민을 정치적으로 각성시켜, 이후에 전개되는 민족·민주운동의 출발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