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부상병들은 하루 한 번이라도 그녀가 지나가는 모습만이라도 보면 위안이 된다고했다. 또한 그녀는 군인들의 휴게소를 설치하고 군인가족 돕기 운동을 벌였으며, 심지어는 군인의 우편제도와 저금제도까지 실시했다. 나이팅게일은 밤이면 환자의 순시를 하룻밤도 빼지 않았으며 등불을 들고 침대 사이사이를 다녔다. 그래서 그녀는 `등불을 든 여인`으로 알려졌으며 그녀를 따르는 후배 간호사들은 식전에서 나이팅게일 등불을 계승받는 것이다.
둘째, 나이팅게일 간호학교를 들 수 있다.
영국 국민이나 정부는 나이팅게일의 업적을 영구히 기념할 수 있는 일거리를 그녀에게 주는 것만이 그녀의 노고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허버트 장관의 건의로 간호교육기금을 모집했다. 그녀는 이 금액으로 그녀가 염원하던 간호사양성소를 세우기도 하고 1860년 6월 유서 깊은 영국의사당 건너편 템즈 강변에 있는 성토마스 병원에 간호교육과정을 설치했다.
제 1회로 1850년 15명이 입학하여 새로운 제도에서간호학을 공부했는데 이들이 졸업 후에 영국은 물론 독일, 북구라파 여러나라,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가서 소위 나이팅게일 제도에 의한 간호사를 많이 양성했다.
이 학교 출신들이 각국에 나가서 일한 역사를 보아도 대개 처음10년 동안은 반대에 부딪쳤으나 점차 교육 받은 간호사의 가치를알게 됨으로써 이 학교의 명성은 전 유럽과 아메리카 및 아프리카까지 퍼지게 되었다.
셋째, 그녀의 후반기 업적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영국 군대의 의무 행정을 위한 개선안을 만들어서 의회에 보냈으며 그 실행을 촉구했다. 미국 남북전쟁 때에도 군인의 구호사업을 위한 참고자료를 주었으며 병원보고를 도표식으로 하는 방법과 질병과 사망의 합리적 분류도 최초로 시도했고, 지방의 농촌위생과 방문 간호사 양성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