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묵인’에서 ‘승인’으로 관용의 개념 변화는 역사적 변동을 반영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면 우리는 모든 것을 관용해야 하는가 라는 곤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판단`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열린 자세를 취한다면 아무런 갈등도, 적(敵)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것은 극단적인 상대주의에 내맡기는 것이 된다. 이것은 매우 위험스러운 것이다.
이처럼 관용이 도덕적 자기부정을 낳는 역설을 피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인권의 존중이라는 관용의 입법화를 주장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관용은 시민의 도덕적 의무사항이고, `권리`가 될 수 없지만, 인권은 법적으로 완전한 효력을 가지는 `권리`로 설정될 수 있기 때문에, 관용의 임의성이 갖는 한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개인은 도덕적 자기부정의 곤란에 빠지지 않으면서, 주권자와 시민, 시민 상호간에 서로 방해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관용은 도덕적 개념으로 법적 개념인 인권에 선행하는 것이다. 인권이 존중되려면 타민족, 타종교, 타문화에 대한 차별, 편견이 제거되어야 하고, 관용은 바로 그러한 차별, 편견을 제거하기 위한 도덕적 의무의 장치이다. 아무리 좋은 법률과 제도를 갖추었더라도 관용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인권의 보장은 불가능한 것처럼 관용은 법 이전의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