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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명이 남긴 시 한편을 꼽으라면 제일 먼저 입에서 흥얼거려지는 작품이 「내 마음은」이다. 너무 순수하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완벽한 사랑의 시편이다.
이런 비단결 같은 시를 남긴 김동명이지만 그의 일생은 곡절이 너무 많고 가슴 아픈 참변도 여러 번 있었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그는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갔다. 강원도 명주군 노동리 산골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여장부 어머니 덕분에 신학문을 배울 수 있었고 순전히 남의 도움으로 동경 유학까지 할 수 있었다.
68세 되던 1968년 1월 그가 중풍으로 타계할 무렵, 그는 직업도 없고 원고료 수입도 없는 빨간 맨손이었다. 살던 집을 줄이고 줄여서 약값 대다가 마지막은 ‘서울의 시골 지역’ 남가좌동 모래내의 다 허물어져가는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빈수래 빈수거(貧手來貧手去)라고나 할까.
김동명은 자기의 아호를 초허(超虛)라고 스스로 지었으나 한번도 써먹지 않았고 또 자기의 일생을 초허(超虛)스럽게 살지도 않았다. 일 욕심이 많은 그는 남이 하는 짓은 모두 해보려고 했다. 20대에는 시인으로 이름을 얻었고 30대에는 장사 수완을 발휘해서 목재상, 땔나무 장사,
양곡배급소까지 경영해서 큰돈을 만져 보았는데 심지어는 흥남 역전에 부동산 투기를 크게 하기도 했다. 통일이 되어서 요행히 원 소유권이 찾아지면 그 자녀들이 막대한 땅을 유산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