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임진왜란의 발생과 전개
임진왜란은 선조 25년(1592)에 일어나 31년(1598)까지 7년간에 걸쳐 지속된 동아시아 국제전쟁이었다. 당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백여 년간에 걸친 전국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통일을 이룩하였다. 도요토미는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세력이 강성해진 다이묘들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고, 동시에 대륙과 한반도를 정복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지배자가 되려는 야욕을 품었다. 일본은 침략에 앞서 정탐꾼을 파견하여 조선의 지리와 정세에 대한 정보를 치밀하게 수집하였다. 또한 서양의 총포술을 도입하여 개량한 조총으로 군사들을 무장시켰다. 그리고 일본은 명을 치러 가는 데 필요한 길을 빌려 달라는 이른바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조선 침략의 구실로 삼았다.
왜군은 선조 25년(1592) 4월에 약 2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부산의 동래를 침략하였다. 이 때 부산첨사 정발과 동래부사 송상현이 부산과 동래에서 상륙하는 왜군을 맞아 사투를 벌렸으나 실패하자, 왜군은 세 길로 나누어 서울을 향해 북상하였다. 중앙에서 이를 막기 위해 출정한 도순변사 신립은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항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파죽지세로 북상한 왜군은 부산에 상륙한 지 18일만에 서울에 입성하였고, 6월에 평양과 함경도까지 유린하였다. 이에 반하여 해전에서는 도처에서 왜군을 섬멸하였다. 전라좌수사 이순신, 경상우수사 원균 등이 이끄는 수군은 왜군 보다 우수한 선박과 화기를 이용하여 크게 전과를 올렸다. 특히 한산도에서는 최대의 승리인 한산대첩을 거두었다. 이로써 수군은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수륙 양면에서 협공하려던 왜군의 작전을 봉쇄하였으며, 전라도의 곡창지대를 보존할 수 있었다.
수군의 승리와 의병의 활동, 육군의 전열 정비 등으로 전세가 반전되어 가고 있을 때 이여송이 이끄는 5만 명의 명나라 지원군이 도착하였다. 전쟁 초…
참고문헌
1. 양재숙(2001). 임진왜란은 우리가 이긴 전쟁이었다. 가람기획
2. 조중화(1996). 다시 쓰는 임진왜란사. 학민사
3. 김문길(1995). 임진왜란은 문화전쟁이다. 혜안
4. 국립진주박물관(2003). 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