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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유, 소년시절의 내적체험
융의 심성의 독특함은 이미 어린시절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년기의 가장 주목할 갈등은 신의 본체에 관한 물음이었다. 개신교 목사관에서 듣고 보고한 것들은 어린 융에게 하느님과 예수님의 인자함과 죽은 이들을 자기 곁으로 데려가는 무서움이 교차된 복합된 인상을 남겼다. 융은 유년기에 나무를 깎아 까만 색칠을 한 남자인형에 외투를 입히고 길다란 돌을 색칠하여 함께 작은 상자에 넣어 다락의 대들보 위에 숨겨두고는 가끔 들여다보기도 하고 편지처럼 글을 써서 그 종이를 돌에 감아두는 일을 일년이나 계속했다. 괴로울 때나 우울할 때 그 인형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했다. 소년 융은 이런 그의 ‘놀이’와 그의 인형과 돌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훨씬뒤에야 융은 그 인형이 고대 그리스의 의신, 아스클레피우스를 수행하며 그에게 책을 읽어주는, 외투를 입은 작은 키의 신, 텔레스포로스와 연관됨을 발견하였고, 돌은 원시 종족에서 흔히 쓰이는 마력과 생명력을 지닌 돌과 상통하는 것임을 알게되었다.
“내가 어릴적에 그것은 뒤에 내가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관찰한 것과 꼭 같은 식으로 내 안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무엇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훨씬 뒤에야 비로소 거기에 관해 생각해 본다.
태어난 뒤 배우지 않고도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모든 인류에 보편적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워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씨앗(조건)이 있고 그것이 상징으로 표현된다는 융의 집단적 무의식과 원형론은 융 자신의 이러한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3.청년기의 고뇌와 극복
11살에 융은 김나지움(대학예비고)에 들어간다. 길거기에서 어떤 소년의 습격을 받고 쓰러진 뒤 기절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으로 노이로제증상을 체험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치유의 경험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