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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高句麗)가 멸망당한 뒤 이국(異國)땅인 당에 강제로 이주(移住)되어 많은 역경(逆境)과 차별속에서도 굳세게 살아간 고구려 유민(遺民)중에는 당대(當代)와 후세에 길이 빛날 위훈(偉勳)을 남긴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서도 특히 대당건설(大唐建設)에 위대한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중세 동서교류사(中世東西交流史)에 하나의 획(劃)을 그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고구려의 명장(名將) 고선지(高仙芝)이다. 그러나 이러한 빛나는 위훈(偉勳)에 비해 그에 관한 연구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고선지에 관한 기록은 『新·舊唐書』의 간단한 열전(列傳)과 몇 편의 소논문 그리고 백과사전에 약간의 설명 정도이다. 이는 그가 `당객경(唐客卿)` 이어서 중국사서(中國史書)에서는 간단한 열전정도만 남기고 있고, 그가 군인 출신이기 때문에 어떠한 문집이나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본 고에서는 고구려 유민들의 이주(移住)를 통해 고선지의 성장과정에 대해 알아보고 그의 서정(西征)중 중세 동서교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탈라스전(戰)을 통해 그 의의와 서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는데 주(主)로 참고한 된 글은 무하마드 깐수(Muhamad Kansu) 교수의 『高仙芝의 西征』이라는 논고(論考)였음을 밝히는 바이다.
1. 고구려 유민과 고선지
(1) 고구려 유민의 당으로의 이주 배경과 과정
당은 A.D.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다음 해(高宗總章 2년) 4월 고구려 유민에 대한 추호이주정책(抽戶移住政策)을 결정하고 많은 고구려의 유민들을 내지제주(內地諸州)로 강제 이치(理致)하였다.
이는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의 유민들은 항당복국투쟁(抗唐復國鬪爭)을 지속적으로 실시했고, 당은 이를 저지 하기 위한 수단으로 추…
참고문헌
《삼국사기》
《구당서》
《신당서》
무함마드 깐수, 「고선지의 서정」,『史學論叢』, 일월서각.
W.프랑케 저, 김원모 역,『동서문화교류사』,단국대학교 출판부.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배설 편저,『세계사 대사전』, 민중서림.
현규환, 『한국유이민사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