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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에 대해 최정무는 `식민적 근대성`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한국인의 근대화는 `근대성없는 근대화` 달리 말하면 근대적 주체성이 결여된 황홀경 같은 그림자 근대화라는 것이다. 그는 식민적 근대성의 작동을 상품 물신주의에 비유하고 있다.
`상품은 생산관계를 감추면서 욕망을 생산하는 마술적인 후광 혹은 황홀경을 구사한다. 지식생산이든 식민행정이든 간에 근대성의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구체화가 일종의 마술을 걸어 표상되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생산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한국인들은 근대성의 창조자, 참여자가 아니라 관객(spectator)이라는 한정된 위치로 밀려난다. 포스트모던 세계의 관객으로서 주체성이 발전한다면, 식민화된 한국인들의 근대화는 근대성 없는 근대화였다 할 수 있다. 남한의 근대화는 물신화된 시각적, 물질적 근대성을 모방하는데 집중했으나 이는 이를 밑받침하는 하부구조까지 포함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현대 한국은 식민지 과거를 극복했다기보다는 일본의 복사물이 되어왔다.`
여기서 한국의 식민적 근대성의 연약한 구조는 다음에 논의할 일제 식민정부가 취한 풍수정책과 그 주술적 효과에 기인한다.
5. 식민주의 주술과 에로틱 풍수
일제 단맥설의 진원지로서 구총독부 건물은 식민지배의 총 본산이었을 뿐만 아니라 피식민지 한국의 땅을 여성화하여 성적으로 유린한 거대한 `식민역사의 팔루스`였다. 탈식민 시기에 이를 대체한 `민족 팔루스`는 식민주의 기억을 환기할 때마다 그 남성성의 기는 꺽이우고 허약해지기를 반복해온 것이다. 식민주의 역사와 민족주의 역사의 에로틱 정치학은 한국인이 근대화의 관객으로 머물러 있는 한 성적 불평등의 식민적 위계질서로 남아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한국을 여성화한 일제 식민주의의 에로틱 주술화 과정에 대해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