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중국에 있어 이것은 견딜 수 없는 부당한 일이었다. 중국대표는 회의에서 `21개조는 최후 통첩의 위협에 의한 것으로서 무효라는 사실`과 `중국이 독일에게 선전포고(1917년8월 북경정부는 참전에 나섰다.)했던 이상 독일과의 조약은 무효가 되며 따라서 독일의 권익은 당연히 중국에게 직접 반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을 예상하고 있던 일본은 이미 치밀한 준비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즉, 첫째로 중국의 참전에 앞서서 일본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와의 사이에서 `강화회의에서는 독일권익의 일본에의 무상양도를 인정한다`는 비밀약속을 손에 넣은 다음, 다시 중국 참전 뒤인 1918년 9월에는 <산동성에서의 모든 문제처리에 관한 교환 공문>을 단기서 정부와의 사이에서 체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교제철도를 경비하던 일본 군대를 대부분 청도로 철수시키고 경비는 중국의 순경대에 위임하지만 그 순경대에는 일본인의 고문을 둘 뿐 아니라 이 철도를 중·일 합판으로 하는 등 말하자면 실질상의 일본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했던 것이다. 더욱이 이 공문에는 전권공사 장종상의 이름으로 `중국정부는 일본정부의 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