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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隋)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후 동아시아 세계는 이른바 “일원적(一元的) 천하 질서(天下秩序)”가 완성되어 한반도가 간절히 바라는 통일된 삼국과 상호 호응되었는데, 이때부터 한반도 삼국은 중국에 대한 외교에서 서로 경쟁적인 단계로 들어갔다. 삼국은 외교적인 상호 경쟁 과정 중에서 중국에 대한 외교 방식을 과거의 군사(軍事)를 위주로 한 외교적 성질을 문화적 성질로 전환시켰는데, 신라가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이때, 신라는 한강 유역을 점령함으로써 중국과의 교통 요충지(要衝地)를 확보하였고, 아울러 고구려· 백제와 수· 당 사이의 불화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친당 정책(親唐政策)을 전개해 과거의 고립(孤立)정황을 타파시켰다. 당시 신라의 우월한 외교정책의 최대 공헌 자는 김춘추(金春秋-후에 무열왕으로 즉위)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진덕왕(眞德王) 2년(648년)에 당에 조공(朝貢)할 때의 행적이《三國史記》권5 〈新羅本紀〉진덕왕 2년 조에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