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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각(淸讌閣)의 난간 밖에는 돌을 모아 산을 이루었고(疊石成山) 뜰 가에는 물을 끌어 못을 만들었다. (석가)산은 우뚝우뚝 온갖 형상을 이루어 장관이었고, 맑게 고인 물은 사방을 더욱 환하게 하였다.
또 고려사에 의하면 의종 6년(1152) 4월에는 수창궁 북원(壽昌宮 北園에) 괴석을 쌓아 가산을 꾸미고 (聚怪石築假山) 그 옆에 만수정(萬壽亭)을 세웠다고 하였으며 의종 10년(1156)에는 양성정(養性亭)을 세우고 그 곁에 괴석을 쌓아 가산을 만들었고 의종 11년에는 태평정원(太平亭園)을 만들고 괴석을 쌓아 仙山을 만들었다(聚怪石作仙山)고 하였다. 괴석에 의한 假山이야 말로 仙山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석가산 문화는 이어졌다. 광주지방의 무등산 북쪽 기슭에 1500년대에 조영(造營)한 소쇄원이나 서하당(棲霞堂)에도 석가산이 만들어졌다. 전라남도 해남반도(海南半島)의 남쪽 약 50km의 거리에 있는 보길도(甫吉島)의 부용동(芙蓉洞)에도 1668년에 윤선도(尹善道)의 서자(庶子)인 학관(學官)이 곡수당(曲水堂) 뜰에 석가산을 만들었다(臺上築石爲假山高丈餘 <윤위의 보길도識, 1748>)고 하였다.
1864년 조영한 창덕궁(昌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