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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은 한반도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에서 해방된지 3년이 지난 후에야 처음으로 자주적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만남을 가졌다. 1948년 4월 18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가 바로 그것이다. 남북연석회의에는 남북의 56개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이 참가하였다.
해방이후 처음으로 갖는 회합이었지만 남북연석회의의 참여자들은 그 결과에 대체로 만족하였다. 이 남북연석회의는 사상과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단결을 시도하였으며, 외세에 의한 민족분단을 반대하고 민족자주성을 구현했다는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협상의 성과와 의의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급속히 서로 다른 길로 들어섰다. 남쪽에서는 단독선거가 실시되었고 북쪽에서는 ‘전조선중앙정부 수립노선’이 관철되었다.
남북의 정치정세가 정부수립으로 치달음으로 인해, 남북협상에 참여했던 남한정치세력들은 새로운 선택과 재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남과 북에서 정부수립에 참여하기도 하고, 남에서 새로운 정치운동을 준비하기도 했다. 이 과정은 통일에 대한 최초의 남북간 모색이 좌절되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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