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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일어난 갑오농민전쟁은 거시적으로 파악할 때 개항 이후 조선사회가 직면한 내외적 모순의 총체적 폭발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시적으로 본다면 지역별 차이가 지역적 전투상황이라든지 집강소 활동에 영향을 주어 지역에 따른 차이를 보였다. 따라서 농민전쟁을 연구할 때 이 두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이나 지방·지역사 연구는 후자에 더 치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현재 지방·지역사 연구의 문제점이자 활성화시키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지역별 연구
가 활발해지고 다량의 새로운 자료
가 발굴됨에 따라 갑오농민전쟁의 연구에서 각 지역별 특성을 간과해서는 안되고, 이에 따라 전남지역 연구 또한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임이 확인되었다
. 즉 공주 우금치전투 이후에도 광주·나주·영암·여수·광양지역에서 격렬한 전투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장흥과 강진지역에서는 일본군과 관군에 저항하는 대규모의 전투가 몇 차례 벌어져 엄청난 인명의 살상이 있었고 이를 기점으로 전투다운 전투는 일어나지 않아 사실상 농민전쟁의 종결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뒤는 일방적으로 일본군과 관군의 추격과 보복…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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