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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학파의 총수 이익은 남인계통 학자로서 ’사단칠정‘ 논쟁에 있어서도 퇴계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더욱 주리적으로 순화하여 이이의 ’기발이승(氣發理乘)‘과는 반대로 ’이발기순(理發氣順)일도설(一途說)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실학자인 까닭은 경세사상에서 이이 및 유형원의 계보를 발전시킨 것 때문이다. 이익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이이의 경세책은 당면 시무(時務)에 부응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유형원의 발상은 봉건체제의 경제적 토대를 이루는 전제(田制)에 대한 개혁으로부터 시작하는 체제 그 자체의 근본적 개혁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익은 재야생활로 일관한 남인계통의 유형원과 서인(노론)파의 원류인 이이의 학풍을 이어받아서 결과적으로, 성리학에서는 이황, 경세사상은 이이, 유형원의 것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또 남인계통의 학자로서 평생 이익을 사숙한 성호학파의 준재 정약용도 이황을 존중한 학자였으나 성리학자로서의 그는 이이의 주기론적인 기발이승(氣發理乘)일도설(一途說)을 취해 이익과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렇듯 실학파에는 남인계 학자들에 의한 성호학파(星湖學派)와 함께 노론계의 학자들에 의한 북학파(北學派)가 있었다. 당시 풍조로는 당파를 달리하면 통혼도 사제관계도 맺지 않았지만 성호학파와 북학파는 각각 학파를 달리하면서도 경세(經世)의 학(學)에 대한 공통의 관심으로, 상호간에 기맥이 서로 통하는 것이었다.
홍대용은 박지원, 박제가 등과 함께 학파와 당파를 추월하여 학문의 관심을 이이의 ‘성학집요(聖學輯要)’와 유형원의 ‘반계수록(潘溪隋錄)’,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 등 경세치용의 학에 기울어있었다. 그러나 북학파의 특징은 ‘춘추(春秋)’ 대의(大儀)에 의한 존명배척적(尊明排淸的)인 북벌론에 대결하여 대…
홍대용은 박지원, 박제가 등과 함께 학파와 당파를 추월하여 학문의 관심을 이이의 ‘성학집요(聖學輯要)’와 유형원의 ‘반계…
참고문헌
1. 강재언, 『한국 근대사연구』, 한밭출판사, 1982
2. 강재언, 『 한국의 개화사상』, 비봉출판사, 1981
3. 한국철학사 연구회, 『한국 실학 사상사』, 다운샘, 2000
4. 김길환, 『조선조 유학사상연구』, 일지사,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