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왜란 중에 조선 군민의 가장 큰 괴로움은 식량난이었다. 명나라 원군이 조선땅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식량난이나 군량미 부족 보다도 왜군과 맞서 싸울 전투 병력이 더 절실히 요망되었다. 그러나 명나라 원군이 들어온 뒤에는 훈련된 병력의 부족 보다도 군량미의 부족이 더 무겁고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명나라 군사가 내원할 때는 병력만을 보낸 것이 아니라 무기 등 군수 물자와 군량미도 함께 보내왔다. 그런데 군량미는 명군에 의해 그들의 진영까지 운반되지 않고 압록강을 건너 의주까지만 전달되었다. 그러므로 명군의 급식을 위한 조선측의 군량미 조달은 적기에 공급되기가 어려웠다. 군량미의 수송은 육로와 해로 두 길을 택하였다. 명군이 내원한 이래 1594년(선조 27) 8월 일단 본국으로 철수하기까지의 기간은 주로 육로로 수송하였다. 이를 위해 싸움에 나갈 수 없는 사람이나 부녀자 및 각처의 의병이나 의승군을 동원하였다. 또 수복 지역의 소나 말은 물론, 왕의 호위병과 동궁의 행차를 따르는 군인 중 말을 소유한 자도 차출하여 군량미 운송에 나서게 하였다.
해로는 정유재란으로 명군이 두번째 내원하면서부터 많이 이용하였다. 정부는 이를 위하여…
참고문헌
▶단행본
·한명기 「임진왜란과 한중관계」역사비평사
·강만길「조선후기 연구의 현황과 과제」창작과 비평사
·양재숙「다시 쓰는 임진대전쟁」 고려원
·이장희 「임진왜란사 연구」 아세아 문화사
·김문길 「임진왜란은 문화전쟁이다」도서출판 혜안
·최영희 「임진왜란-교양국사총서 7」『세종대왕기념사업회』1999년 11월
·서필량 「임진왜란」 『서문당 』,1994년, 09월
▶논문
·권중헌 「임진왜란을 중심으로한 삼국의 외교관계」
·이헌종 「명사접대고」『향토서울』12, 1961
·이존희 「조선 전기 대명서책무역」『진단학보』44,1976
·박원호 「명`정난의 역` 시기의 조선에 대한 정책」『부산사학』4,1980
·김한식 「명대 중국인의 대한반도 인식」『동양문화연구』8, 경북대,1981
·한상권「16세기 대중국 사무역의 전개」『김철준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1983
·김구진 「조선전기 한중 관계사와 시론」『홍익사학』,4, 1990
·민덕기 「조선후기 조·일강화와 조·명관계」『국사관논총』12집,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