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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필립 4세의 생애
필립 4세(1268~1314)는 카페왕조 제 11대의 프랑스 왕이었는데, 재위기간은 대략 30년(1285~1314) 정도였다. 그는 단려왕(端麗王: le Bel)이라고도 불렸는데, 그의 성격에는 수수께끼가 많고 당시의 평판도 여러 가지이며, 의지가 박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 통일의 체제를 처음으로 갖추고 측근의 법조 정치가들이 추진한 정책은 매우 과감하였으며, 왕권신장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는 16살 때 기사작위를 받고, 나바라의 잔과 결혼했다. 1285년에 그는 동생 샤를을 아라곤 왕위에 앉히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남쪽으로 원정을 떠났다. 하지만 필립 4세는 이 모험을 공감하지 않았다.
즉위 후 그는 곧 아라곤과의 싸움을 종결시켰고, 플랑드르 문제가 당시 정책의 초점이 되어 그 기간 동안 브뤼지의 봉기로 프랑스병(兵)의 학살과 쿠르트레 전투의 패배(1302년)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화의를 맺어 전쟁을 종결, 플랑드르 백작령의 자립을 확인함과 동시에, 그 일부를 할양 받았다. 한편, 국내 교회령(敎會領)에 대한 과세문제가 발단이 되어, 로마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일대 분쟁을 일으켰다. 교황이 군주에 대한 교황권의 우위를 주장한 데 대하여, 1303년 최초로 삼부회(三部會)를 소집하고 국내를 결속시킨 뒤, 아나니로 교황을 급습하는 강경 수단을 취하였다. 마침내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김으로써, 교황의 아비뇽 유수시대(1309~1377)를 열었다. 또, 1307년 성전기사단의 해산을 명하여 전재산을 몰수하고, 유대인·롬바르디아인 등의 외국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박해정책을 취하였다.
그는 가벼운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자신의 할아버지 성 루이의 고향인 푸아시에서 요양하다가 건강을 회복, 자신의 고향인 퐁텐블로로 갔고, 죽기 전날 마지막 세금 징수를 중단했다. 이후 그의 3명의 아들들(루이 10세, 필립 5세, 샤를 4세)은 잇달아 프랑스 왕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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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100.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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