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Ⅰ 들어가며….
몽양 여운형 선생 과연 그는 누구인가? 한국현대사에서 몽양 여운형 선생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해 아직까지도 학계에서 엇갈린 평가로 인해 독립유공자로조차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그에 대한 평가는 암호투성이였다. 미 군정에 드나든다고 친미파, 회색 기회주의자로, 우익과 합작을 추진하면서는 좌익분열주의자로, 북한, 소 군정을 방문했다고 친북·친소파로, 좌익내 지도자로 활동했다고 공산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몽양 선생에 대한 미군정의 시선은 늘 의혹에 가득 차 있었다. 미국 신사같은 차림새와 준수한 외모, 뛰어난 웅변술, 인간적 매력으로 많은 미국인들을 매료시켰지만, 정치적으론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미 군정은 한국 정치지도자들에게 별명을 붙였다. 병약했던 김규식은 그의 이름(Kyu-sick)을 본 따 약골(sickly)로, 통제할 수 없는 민족주의의 화신 김구는 흉폭한 호랑이(black tiger)로, 여운형은 은도끼(silver ax)로 불렀다. 겉은 그럴듯한데 마음대로 써먹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는 미 군정과 소 군정, 좌익과 우익, 남북 모두로부터 유혹받은 동시에 비난당한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그렇지만 몽양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대중 정치가였다. 일제하에선 2차례 투옥되었고, 좌우를 넘나들며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해방이후에는 좌우·남북·미소를 뛰어넘는 민족통일을 추구했다. 그는 좌익과 협력했지만 유물사관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의 레닌주의, 중국의 삼민주의처럼, 한국에서는 여운형주의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감히 오늘 이렇게 몽양 선생에 대해 다시 생각코자 글을 쓰는 이유는 선생이 단순히 좌익독립운동의 거두여서가 아니라, 선생의 참된 민족사랑, 나라사랑의 진실을 알리고 몽양 선생의 시대에 따른 행동에 나타난 사상분석을 통해서 몽양 선생의 고뇌에 대해 알 수 있는 조그마한 기회가 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Ⅱ 여운형은 누구인가?
■ 몽양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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