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작성하고자 노력하였으니 만족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럼 자료를 받으시는 모든 분들께 언제나 행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43
목차/차례
- Ⅰ. 머리말
- Ⅱ. 학살
- Ⅱ-1. 표선 한모살
- Ⅱ-2. 성산 터진목
- Ⅱ-3 성산 우뭇개
- Ⅲ. 잃어버린 마을
- Ⅲ-1. 노형(함박이굴, 방일리, 개진이, 드르구릉)
- Ⅲ-2. 곤을동
- Ⅳ. 조사를 마무리 하며
-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Ⅱ. 학살
1948년 한반도의 남쪽 섬 제주도에는 광란의 바람이 휘몰아쳤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됐다. 희생자 숫자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3만 명 안팎이란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당시 섬 주민을 27만 명으로 봤을 때 전체 인구 9명 중 1명이 희생된 것이다. 제주도 주민들은 미군정이 실시한 남한 단독선거를‘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영구히 분단시키는 선거’라고 주장하며 반대하고 나섰다가 참혹한 희생을 치른 것이다.
희생자 숫자도 엄청나지만 이 수치 만을 보고 피해 정도를 모두 표현할 수는 없다. 수치로 집계될 수 없는 것들, 가령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간직한 채 숨을 죽이고 살아가고 있는 4 · 3 피해자와 유족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이를 방관해 온 이 나라, 이 사회의 부도덕한 윤리성에 더 큰 문제가 있다.
4 · 3은 단순히 제주도 사건으로 치부할 수 없는 대사건이다. 한국전쟁이 우리 민족의 최대 비극이었다면, 그 버금가는 참극이 바로 제주 4 · 3이다. 미군정 시절인 1948년의 제주도는 전쟁 지역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공권력에 의해 전쟁 상황을 뛰어넘는 학살…
참고문헌
· 제주 4 · 3 제50주년 위원회(1998),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 학민사
· 제주 4 · 3 사건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2003),『제주4· 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제주 4· 3 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위원회
· 노형지편찬위원회(1996),『老衡誌』,노형지편찬위원회
· 제주 4 · 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4 · 3 제57주년 역사순례 자료집』
· 제주일보 2001년 1월 13일자 『4 · 3 폐허마을 유적지화』
· 제민일보 2004년 6월 27일자 『4 · 3은 말한다.』
· http://blog.naver.com/small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