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최초의 불교문화, 그리고 페르시아, 중국 문화에 의한 국제성을 떠올리는 아스카 문화에 대해 조사하였습니다.
아스까문화의배경
목차/차례
- Ⅰ. 서론
- Ⅱ. 본론
- 1. 불교와 도교
- 2. 내정과 외교
- Ⅲ. 결론
본문/내용
신라에서는 불교의 수용을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지만, 왜국에서도 소위 숭불ㆍ배불 논쟁이 있었다(『니혼쇼끼』,『니혼료오이끼日本靈異記』등). 6세기의 전반, 왜국과 신라는 중국의 책봉체제에는 편입되지 않았지만, 그 양국에서 숭불ㆍ배불의 논쟁이 벌어진 사실은 신라와 왜국의 토착신앙의 양상과 함께 흥미롭다.
『니혼쇼끼』에 따르면, 624년(스이꼬推古 32)에 ‘僧正ㆍ僧都ㆍ法頭’(7세기 이후에 나타난 불교 통제기관. 승정과 승도는 승려의 감독기관이고, 법두는 사찰의 재정을 감독했다) 제도가 설치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이것들은 훗날의 僧網制(8세기 율령국가시대의 불교 통제기관)를 전제로 한 것이며, 승정ㆍ승도제는 백제를, 법두제는 신라를 통해 도입된 것으로 사료된다.
불교의 확산에 따라 각지에 사원이 건립되는데, 불교의 보급은 寺工ㆍ瓦工ㆍ畵工 등의 기술혁신에도 크게 기여했다. 고분으로부터 사원으로의 움직임도 간과할 수 없다. 아스까지(飛鳥寺)탑의 心礎에서 勾玉ㆍ管玉ㆍ刀子ㆍ杏葉形金具ㆍ馬鈴 등 고분의 부장품과 유사한 물품들이 출토됐으며, 또 마구의 제작자집단이었던 鞍部(鞍作)가 불상제작자〔佛師〕로 전환해가는 상황 등을 …
참고문헌
구태훈, 『일본역사 탐구』, 태학사, 2002
아사오 나오히로 외, 『새로 쓴 일본사』, 창작과 비평사, 2003
연민수, 『일본역사』, 도서출판 보고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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