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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한 독일, 프랑스 지도자들은 충격과 분노 속에 신 유고연방이 NATO에 대한 약속위반을 비난하였으며, 유엔사무총장도 1월 18일 대책마련을 위한 긴급회의를 열고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신 유고연방의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코소보 주둔 유럽 안보협력기구 감시단장에게 철수를 요구하는 한편, 나토의 경고를 전달하기 위해 파견된 유럽연합군 최고 사령관의 면담도 거절하고 국제 형사재판소 조사단의 입국도 거부했다.
유럽 안보협력기구와 나토 회원국들은 1월 18일과 19일 각각 회담을 갖고 코소보 사태 해결을 위하여 군사력 개입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신 유고연방의 세르비아 군은 이와 같은 국제적 결의에도 불구하고 1월 19일 전투를 재개하여 2월 6일에는 코소보 해방군 24명을 사살하였다. 한편 코소보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유럽 6개국 접촉그룹(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은 2월 6일 프랑스 랑부예에서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대표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평화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6개국 접촉그룹은 코소보 문제해결을 위하여 코소보에 약 3만명 정도의 나토 평화유지군 배치를 제의하였다. 그리고,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대표는 코소보에 대하여 3년간 자치기간을 두고 이 기간이 끝나면 완전독립 보장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세르비아는 유럽 안보협력기구의 감시단 파견기간을 연장할 수는 있어도 나토군의 코소보 주둔은 절대 허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코소보의 독립도 있을 수 없다고 하여 협상은 결렬되어 버렸다. 미국은 3월 22일 최후의 조치고 대통령 특사 리처즈 홀브룩을 밀로셰비치 대통령에게 보내 6개국 접촉그룹의 평화안 수락을 촉구했으나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이를 끝까지 거절함으로써 나토의 신 유고연방에 대한 공습이 가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