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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고려로도 약칭하며, 서한(서한)에서 수(수)·당(당) 시기까지 중국의 동북지역에 나타나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변방 민족이다.
고구려의 조상은 주(주)·진(진) 시기부터 동북지역에서 생활하였다. 기원전 108년 한의 무제(무제)가 4군을 설치하여 요동과 조선반도의 북부를 관할하게 하였다. 그 중 현도군(현 군)의 고구려현이 바로 고구려인들의 거주지였다. 기원전 37년 부여 사람 주몽(주몽)은 현도군의 고구려현 관할 구역 내에 정권을 세웠다. 처음에 흘승골성(흘승골성, 지금의 요령 환인현성 부근)에 수도를 정하였다가 서기 3년(한 평제 원시3년) 국내성(국내성, 지금의 길림 집안시)으로 천도하였다. 서기 427년에는 평양성(지금의 평양시)으로 천도하였다. 고구려의 전성기에는 그 세력범위가 길림의 동남부, 요하(요하) 동쪽 및 조선반도 북부를 포함하고 있었다. 서기 668년 고구려는 당(당) 왕조와 연합한 조선반도 동남부의 신라에게 멸망함으로써 705년간의 역사를 유지하였다.
고구려가 존재한 7백여 년간을 살펴 보건대 그의 주요 활동범위는 모두 중국 중원왕조의 관할 구역 내에 있으며, 중원왕조와 예속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구려 정권의 성격은 마땅히 중원 왕조의 제약을 받으며 지방 정권의 관할 하에 있던 고대 변방민족 정권이었다. 물론 이런 관할관계는 중원왕조 통제력의 성쇠에 따라 때로는 소원하고 때로는 긴밀하기도 했다. 이제 고구려 역사 연구에 관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해 필자의 견해를 간략히 논함으로써 여러 선학들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