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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사헌부의 직제
고려시대 사헌부의 직제는 관부명이 변경될 때마다 변동이 있었다. 고려 중기인 995년(성종 14) 어사대는 대부(大夫)·중승(中丞)·시어사(侍御史)·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감찰어사(監察御史) 등의 관직이 있었고, 1308년(충렬왕 34)에는 대사헌·집의(執義)·장령(掌令)·지평(持平)·규정(糾正)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개국 이후 여러 번 변경되었다. 1392년(태조 1)의 직제가 1401년(태종 1)에 변경되었고, 문종 때의 관원을 보면 판사(判事:정3품)·대부(大夫:정3품)·지사(知事:종4품)·중승(中丞:종4품)·잡단(雜端:종5품)·시어사(侍御史:종5품) 각 1명,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정6품) 2명, 감찰어사(監察御史:종6품) 10명, 그 밖에 문리(文吏) 5명, 녹사 3명, 영사(令史) 41명, 서령사(書令史) 6명, 계사(計史) 1명, 지반(知班) 2명, 기관(記官) 6명, 산사(算士) 1명, 기사(記事) 10명, 소유(所由) 50명을 두었다.
세종 때에 이르러 고정화되어 《경국대전》에 대사헌(大司憲:종2품) 1명, 집의(執義:종3품) 1명, 장령(掌令:정4품) 2명, 지평(持平:정5품) 2명, 감찰(監察:정6품) 13명으로 규정하고 서리(書吏) 39명을 두도록 하였다. 연산군 때는 지평을 없애고 장령 2명을 증원하였으나 중종이 즉위한 후 환원하였다.
Ⅳ. 사헌부의 법적 근거
사헌부는 임금이 월권할 경우 거침없이 탄핵했다. 또 자기 조직의 수장이 과거 부도덕한 일을 저지른 것이 드러나면 바로 파직시켰다. 사헌부는 남을 단죄하는 위치에 있으니만큼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었다.
TV 역사드라마를 보면 조선왕조에서는 임금의 「어명(御命)」 한마디가 모든 논리를 무시하고 초월하는 힘을 가진 사회였던 양 묘사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이는 조선의 사법체제에 대한 이해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조선의 검찰, 사헌부> 이덕일 ;역사평론가·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조선의 청백리, 탐관오리 - 감사, 암행어사의 어제와 오늘> 박성수;역사학자
<두산대백과사전> 참고
<브리태니커백과사전>참고
<엠파스백과사전>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