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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교시 : 금석문을 통한 삼국시대의 조망 ■
조선시대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문서로 기록된 사료가 풍부하나, 고대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그쳐 부족하며, 따라서 금석문은 고대사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사료이며, 정치·경제·사회문화·사상 등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해 준다.
▶ 광개토대왕릉비
1. 장수왕이 부왕인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414년에 세운 사면비석으로, 능과 함께 국내성 동쪽 언덕(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현)에 위치해 있다. 이 비석은 상고사(上古史), 특히 삼국의 정세와 일본과의 관계를 알려 주는 금석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동북아공정이 시작되면서,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4면에는 예서체로 된 1,775자의 문자를 15cm 정도의 크기로 음각 하였다. 이 비석은 고구려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비석으로서, 19C말 청나라 농부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2. 내용☞
서문(序文)으로 추모왕(주몽)의 건국 신화를 비롯하여 광개토 대왕의 세계(世系)와 약력을 서술하고, 핵심을 이루는 본문에는 광개토 대왕의 정복 활동과 영토확장범위를 연대순으로 기술하였다. 끝 부분에는 수묘인(능을 지키는 사람)의 명단 330호와 그들에 대한 관리 규정을 밝혀 두었다.
3. 비를 세운 의의와 목적☞
① 시조인 주몽의 건국신화를 기록함으로써 왕통의 신성함을 내세웠다.
② 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써, 대부분 부왕의 정복사를 연대순으로 기술해 놓았다. 이는 고구려의 권세와 영광을 과시하려는 목적도 지닌다.
③ 수묘인의 명단과 출신지역을 나타내어 장수왕 본인의 토지·세력범위를 과시하고, 관리규정을 함으로써, 왕권에 도전하는 귀족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권력보장을 확실히 하려는 목적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