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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의 발단은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어느날 댄스 스쿨의 여인을 전철 안에서 보고, 댄스로서의 일탈을 시작하면서 차츰 자신의 원하는 것을 하고, 삶의 즐거움을 찾아 가는 즐거움을 그리면서 전개된다.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일본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춤, 부부갈등, 화합 등 의 큰 흐름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판이 보여주는 결말은 미국과 일본이 라는 문화적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아저씨는 외롭다. 그래서 춤춘다. 여기 춤추는 두 아저씨가 있다. 일본 아저씨 ‘스기야마 상’과, 미국 아저씨 ‘미스터 존 클러크’ 남 보기는 멀쩡하지만 실은 이유 없이 공허한 내면을 일상생활 속에 숨기고 있다는 것까지 두 남자의 공통점은 무궁무진하다.
한쪽이 한쪽을 리메이크했으므로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들이 겪는 사건도 꼭 닮아 있다. 출퇴근길 전철의 창 너머로 댄스 교습소의 여자를 발견한다. 그 여자는 댄스교습소의 강사. 어설픈 짝사랑은 곧 건전하게도! 춤 그 자체에 대한 열정으로 전이된다.
하지만 누가 미국 중산층 가정의 자상한 아버지 아니랄까봐 존은, 영화의 뒷부분에서 스기야마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행태를 보인다. 경연대회에서 함께 춤추던 여성파트너의 치마를 밟아 위기에 처한 순간. 스기야마는 사교댄스의 원칙에 따라 끝까지 파트너를 보호하려 애쓰지만, 존은 다르다.
세상에! 그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곤경에 처한 파트너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가족의 오해를 풀기 위해 밖으로 달려 나간다. 서양남자들의 매너가 훌륭하다는 것은 죄다 헛소문이었나 보다. 아니면 그 신사도는 오직 ‘내 가정’과 ‘내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만 발휘되는 것인가 보다.
스기야마는 춤의 윤리에 충실했고, 존은 가족의 윤리에 충실했다. 미국판 <쉘위댄스>에서 중년을 맞은 한 인간의 ‘자아 찾기’는 결국 부부클리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