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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이고 앞으로의 전망까지 걱정하게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역사전쟁 중이다. 밖으로는 중국과 고구려사로 외교마찰을 빚었고, 안으로는 과거청산으로 내전 중이다. 이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역사의식`은 과잉돼 있지만 `역사인식`은 결핍돼 있음을 생각해본다.
역사가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정치가 역사를 주도해서는 안된다. 모든 역사논쟁은 정치논쟁이다. 하지만 역사논쟁 주도권을 정치가가 가질 때 역사의식은 과잉되고 역사인식은 황폐해진다. 동북공정은 정치문제에서 비롯했지만, 중국정부는 학문적 문제라고 발뺌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학문적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 과거사 정리도 마찬가지다.
역사 학문화를 위해서는 먼저 탈도덕화가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근대역사학의 아버지 랑케는 역사학의 임무는 과거의 재판이 아니라 그것이 본래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데 있다고 말했다. 랑케의 이 말은 근대역사학을 성립시키는 모토가 됐다. 만약 랑케가 일제식민시대 역사를 쓴다면 어떻게 쓸까. 함석헌 선생의 증언처럼 `해방은 도적처럼 왔다.` 그 시대 대다수 사람은 일제 패망이 목전에 와있음을 모르고, 일제 신민으로 사는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물론 조국 광복을 신앙처럼 믿고 메시아를 맞이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그런 애국지사를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 하지만 도적같이 찾아온 해방을 맞을 준비를 못한 대다수 사람을 역사에서 제외시켜야 하는가. 그들은 분명 오류를 범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이 그런 삶을 살았다면, 역사가는 먼저 왜 그들이 그렇게 살았는지 면밀히 밝혀야 한다. 후대 관점으로 과거의 역사적 가치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건 역사학의 상식이다. 역사 그 시각에서의 역사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게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