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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은 일종의 반성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관조를 떠난 작가의 전기 해설이나 작품의 역사적 배경설명과 같은 개념적 인식이 아니다. 가다머(H. G. Gadamer, 1900- )의 《진리와 방법》에 따르면, 작품은 단순히 미적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텍스트처럼 읽혀지는 역사적인 의미의 이해가 요구되는 대상이다. 과거의 작품을 관조할 때, 관조자는 작품이 이야기하는 말을 청취하고 작품이 이야기하는 의미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그 작품을 추창조(追創造)하는 것인데, 가다머에게서 이것은 그 작품이 뿌리박고 있는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을 융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융합작용에 의해 작품의 여러 기능이 종교·사회·생활과 같은 역사적인 삶, 그 전체의 연관 속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다머에게서는 건축의 목적이나 조형예술의 종교적 의의, 초상화나 기념비적인 작품의 사회적 기능 등이 강조된다. 이 이해기능의 본래의 모습은 과거 작품의 역사적 이해라기보다 오히려 축제나 유희에서, 그리고 과거의 예배 의식이나 그리스 비극, 오늘날의 락 콘서트 등의 `예술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보는 사람은 완성된 작품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자와 일체가 되어 음악의 연주나 극의 진행에 내면적으로 참가한다. 그 결과 보는 사람은 독특한 융합상태를 경험하고 바로 거기에서 행해지는 예술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연기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이 융합이 작품의 역사적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삶과 문화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다. 가다머는 예술을 단순히 작가의 창작에 의해 일방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을 포함하는 관조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임을 주장했던 것이다. 특히 앵포르멜과 같은 추상회화나 동양의 수묵화는 관조자의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를 다분히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