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예배의 토착화 문제는 많은 선교지에서 논란이 되어왔다. 이러한 논란은 음악과 건축에서도 나타났다. 발리의 청년들이 기독교적인 가사를 옛 전통적 가락에 맞추어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로들은 큰 충격을 받아 공식적인 예배에서는 부르지 못하도록 하였다. 인도의 몇몇 교회가 힌두 사원 비슷하게 건축되었을 때 기독교인들의 전반적인 감정은 전적으로 적대적이었다.(675-676쪽)
- 기독교의 일치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영국 및 해외 성서 공회”(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는 1804년 발족 당시부터 설립 규약과 관점 및 목적에 있어서 초교파적이었다.(679쪽)
·1819년 런던에 있는 선교회들의 간사들은 “런던 간사 협회”를 조직하여 1세기 이상 모임을 계속했다.
·1885년 독일에서는 독일 개신교 선교 협회들의 상임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893년 미국에서는 북미 해외 선교 대회”가 개최되었는데 그 후 이 단체는 실질적인 행정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능력과 영향력에 있어서 꾸준한 성장을 보여주었다.(685쪽)
·1910년 6월 21일 에딘버러 대회를 통하여 로마 카톨릭 교회밖에 최초로 영구적인 국제 기독교 협력 기구를 세웠다. “대회의 상임 위원회”(the Continuation Committee of the Conference)가 그것이다. 1921년에 와서야 존 모트(John R. Mott)박사를 의장으로 하고 올드함(J.H.Oldham)을 서기로 한 국제 선교 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가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다.(686쪽)
- 교회가 느끼고 있는 허약성의 주요 원천이 바로 분열 자체라는 것도 의심할 나위가 없다. 선교지에서 일어나고 있던 활동의 중복현상과 경쟁, 그리고 선교세력을 하나로 집중시켜야 할 필요성에 기…
- 교회가 느끼고 있는 허약성의 주요 원천이 바로 분열 자체라는 것도 의…
결 론
- 기독교의 미래 전망의 변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