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Ⅰ. 문제 제기
일상인들은 삶의 이해를 문제삼지 않는다. 그들은 살 뿐이며, 사는 데 필요한 상식만을 알고, 알려고 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시점의 의미를 규정하지 않고, 또 그렇게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누군가 삶의 이해를 문제삼는다면 그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그의 거주처는 지성(학문) 공동체이다. 물리적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일상인과 함께 살고 있음에도 그는 삶의 이해를 문제 삼는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자연을, 사회를, 정치를, 문화를, 역사를 문제삼고, 이들을 관통하고 있는 것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 의미로 그가 살고 있는 시점을 규정하려고 한다. 이들로 말미암아 삶은 의미있게 되고 자연으로부터 역사가 발생하게 된다. 자연이 자연인 것은 스스로 이해한 삶이 없기 때문이며, 인간이 인간인 것은 스스로 이해한 삶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환경세계에서 자신의 역사를 창조하고, 그런 까닭에 역사적 세계는 그 환경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주관적 타당성을 지니게 된다. 주관적 타당성을 지닌다는 의미에서 환경세계는 정신적 세계이다. 이러한 정신적 세계가 삶의 공동체를 지탱하는 것이며, 인간은 공동체의 정신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후설은 이해된 삶, 즉 삶의 이해가 공동체의 일반적 정신으로, 곧 보편성을 파악할 때, 학의 이념이 된다고 말한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환경세계와 그 환경세계에서의 활동과, 환경세계를 개선하는 창조적 활동과, 그리고 그러한 삶에 기인하는 정신적 통일체로서의 학의 이념을 갖는다. 그것이 그들의 삶의 흔적이며, 역사이다. 그래서 그들은 학의 이념도, 철학의 근원도 그리스에서 찾는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과 정신의 고향, 그리고 그러한 삶의 역사를 가진다.
근대란 유럽인들의 삶의 이해다. 그런 까닭에 엄밀한 의미에서 동양에는 근대가 없다. 근대화란 말은 있되, 근대란 없다. 있다면, 그…
근대란 유럽인들의 삶의 이해다. 그런 까닭에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