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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의 서막
노무현과 조선일보 사이에 불편한 관계가 성립된 것은 1991년 9월에 보도된 노무현에 대한 프로필에서 시작된다.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통합민주당을 결성한 후 그 당의 대변인이 되면서 노무현에 대한 조선일보의 공격은 시작된다. 보통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부분을 나열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당시 조선일보의 보도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특히 조선일보가 1993년 3월에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과 비교해보면 91년의 프로필이 얼마나 이례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91년 프로필관련 보도에 대해 노무현은 각 언론사에 해명서를 배부하게 되고 이에 따라 조선일보와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다. 즉,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며 언론에 있어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던 조선일보에 대해 일개 정치인이 반기를 펼쳐든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정으로 비화되기에 이르고 결국 명예훼손 혐의가 입증되어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편집장이 2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기에 이른다. 물론 재판과정 속에서 조선일보가 노무현이 소속된 정당대표 등을 압박한 경과도 명백히 존재한다. 그러함에도 노무현은 타 정치인과 달리 조선일보에 대해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며 자신의 명예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던 우리나라, 또한 우리의 언론은 유신이후 체제만을 살펴봤을 때 특히 勸言관계에서 세 단계를 거쳐 발전했다. 첫째로 10월 유신에서 6월 항쟁까지로 이 시기는 직접적 언론통제와 종속적 유착관계의 시기였다. 두 번째로 6월 항쟁부터 2001년 1월까지로 이 시기는 선택적 상리공생과 제한적 대립이 이뤄졌던 시기이다. 이 시기부터 언론은 정치권력이 직접적으로 통제할 …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던 우리나라, 또한 우리의 언론은 유신이후 체제만을 살펴봤을 때 특히 勸言관계에서 세 단계를 거쳐 발전했다. 첫째로 10월 …
2. ‘조·한 동맹’과 노무현의 선전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