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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성년이 되면서 친정을 시작하고자 할 때, 민비는 정치적 후원자이며 지지자가 되어주었다. 1873년 11월 최익현(1833~1906) 등 유생들이 상소에 의해 대원군이 실각할 때, 민비는 이제 23세로서 어느 정도 세상물정을 알 수 있었다. 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난 고종을 보필하기 위해 민비는 강력한 근왕세력이 필요함을 깨닫고, 오라버니 민승호와 가까이 했다. 그러나 1874년 민승호의 집에 폭약이 터져, 어머니 및 아들과 함께 폭사하는 참변을 당했다. 오라버니를 잃은 민비는 처음에 친척 오라버니인 민겹호, 민규호 등을 가까이 하고, 뒤에는 양조카인 민영익을 비롯하여 친척 조카들을 가까이했다. 이들은 거의 모두 학문의 기초도 있고, 바깥세상도 많이 아는 개화된 지식인들이었다.
참고문헌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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